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시나리오 원주소

 


 

 

 

 

 

이하 시나리오 스포일러

(상황에 따라 스토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부 개변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만이 널 오롯이 생각해.
 
2022.07.17
 
KPC. 강명주
 
PC. 박백복
 
img
 
 
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백복이는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입니다.
 
백복이가 괜히 강수량에 대해 떠드는 뉴스에 집중하다 보면,
 
듣기 판정
 
백복: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44
판정결과: 실패
 
쏴아아-
 
매서운 빗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비는 언제 즈음 그칠까요?
 
 :다시 판정해보세요...
 
백복: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ㅋㅋ)
 
 :다시...!!!!
 
백복: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49
판정결과: 실패
 
하..
 
쏴아아- 끊이지 않는 빗소리,
 
그 사이 이질적인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앵커가 무어라 하든,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니까요.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
 
“시간당 100mm로 인천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똑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똑똑.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택배를 시켰던가요?
 
누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던가요?
 
기억을 더듬어도 방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백복이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팟-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정전입니다.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하네요.
 
인터폰마저 지직, 뚝.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네요.
 
백복이는 어떻게 하나요?
 
백복:뭐야? 갑자기...
(관리실에서 올라왔나, 생각하며 현관으로 나가 봐요)
누구세요~
 
명주:
복아?
 
백복:엥? 강명주?
 
다행히도 이름 모를 방문객은 아닌 모양입니다.
 
명주 목소리인 것 같은데…
 
비가 힘껏 쏟아지는 창밖을 보면,
 
어떤 이유에서 연락도 없이 찾아왔을지 쉬이 예상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실내는 어둑하기만 합니다.
 
명주:복아, 거기 있어?
 
백복:(???) (현관문 열어요)
 
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선 상대를 확인하면…
 
뚝, 뚝.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입니다.
 
그리고, 물벼락을 맞은 듯 푹 젖은 옷을 입은 명주도 함께.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머리카락,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명주:복아…!
 
당신을 부르는, 파리한 인상의 강명주.
 
심리학 판정
 
백복:
심리학
기준치: 30/15/6
굴림: 2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야, 이 날씨에 여기까지 왜 왔어!
 
명주의 불안한 눈길이 당신을 향합니다.
 
한참을 살피더니, 이유 모를 한숨도 함께 뱉네요.
 
명주:너... 괜찮은 거야?
 
백복:응...?
 
…무엇이?
 
그리 묻는 명주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칩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태연한 낯으로.
 
명주:..아, 아하하! 미안, 미안~ 우산을 깜빡했어!
잠깐 들여보내주면 안돼?
 
백복:아니, 깜빡할 게 따로 있지... 기다려 봐.
 
명주:(축축이)
 
백복:(신발장에 명주 세워 놓고 들어가서 타올 들고 나와요)
 
명주:땡큐~ (빵긋웃으며 손 뻗어요)
 
백복:두 장은 더 있어야겠네... 계속 비 맞고 온 거야??
(발수건 세팅중)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명주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명주]는 젖은 탓에 그저 우뚝 서 있습니다.
 
명주:헤헤...응... 감기 걸리려나~
(발 슥슥 닦음)
 
백복:개학날부터 결석하면 참 볼만 하겠다, 아휴!
 
명주:완전 날라리 같긴 하겠네! (우하하)
 
백복:그걸로 대충 닦고 있어봐. 머리 말릴 것도 하나 더 가져올게.
(화장실로 가요)
 
명주:웅. (말 잘들음)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수건을 꺼내던 백복, 관찰력 판정.
 
백복: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이게????)
 
가지런히 놓인 칫솔이 눈에 밟힙니다.
 
왜지...?
 
백복:...? (무심코 만져바요)
 
재판정.
 
백복: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러고보니... 이 칫솔...
 
원래 이런 색이었던가요?
 
백복:음.....
(최근에 바꿨었나 ㅎ)
 
ㅋㅋㅋㅋㅋㅋㅋ
 
별로 신경 쓸 만한 건 아니군요.
 
백복:(서둘러 수건 들고 나갑니다)
일단 들어와. 아예 샤워부터 할래?
 
명주는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평소보다 더 창백한 낯입니다.
 
그 외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와 다른 점이….
 
관찰력 판정
 
백복: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찰나,
 
명주의 손등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분명 어떤 형태를 이루면서요.
 
명주:아, 그럴까? 너만 괜찮으면 나야 땡큐지!
(현관 앞에서 셔츠 휙휙 벗어요)
 
백복:야, 야. 들어가서 벗어야지!!
 
명주:아 물 떨어질까봐~ 셔츠만, 셔츠만!
(헤헤, 하고 셔츠 버려두고 화장실로 가요 ㅋㅋ)
잘 쓸게~
 
백복:어휴, 저거...
(부엌으로 가서 뭐 내줄 거 있나 볼래요)
 
[찬장]에는 티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백복:(찬장 뒤적뒤적이)
 
백복이가 찬장을 뒤지면...
 
어라?
 
내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는데…?
 
백복:뭐야! 다 어디갔어!
 
행운 판정
 
백복:
기준치: 67/33/13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오~
 
다행히도, 구석에 딱 하나 남은 가루 코코아를 발견합니다.
 
유통기한이 조금 아슬하네요.
 
백복:티백이 있었을텐데... (이거라도 줘야겠다. 하고 코코아 꺼내요)
(전기포트에 물 끓이는 중...)
 
백복이는 명주를 위해 코코아를 준비합니다.
 
이이코~
 
백복:(뉴스 다시 들어볼래요)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비, 비, 그리고 비.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
 
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지능 판정
 
백복: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음...
 
그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합니다.
 
뭐, 백복이가 알 바 아니죠.
 
쏴아아, 비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백복:(맞지맞지)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명주:복아~! 나 갈아입을 옷 좀!!
 
백복:어~
 
명주:빨리~ 빨리~ (노래톤)
 
백복:(티셔츠랑 잠옷바지 꺼내서 욕실 안으로 넣어줘요)
 
명주:땡큐!
 
백복:자기 집이야, 아주.
 
명주:(옷 쇽샥 입고 머리 끝 조금 젖은 채로 나와요)
히히.
그래도 이런 날에 나 보니까 좋지?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
 
백복:어차피 내일 볼 건데 뭐.
 
명주:이 달콤한 냄새는 뭐야?
 
백복:진짜로, 갑자기 왜 온 거야?
 
명주:아니~ 갑자기 비가 오니까~ (말끝흐림)
 
백복:아! 맞다. (코코아 건네줍니다)
 
명주:헉! 날 위해. (감동)
 
백복:비가 오면 집에 있어야지!~
 
명주:(호로롭 마십니다)
헤헤...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명주는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명주:음...
맛있다, 코코아!
 
이질적인 하루입니다.
 
폭우와 정전,
 
빗방울과 명주,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
 
내일은 개학식이니 명주도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죠.
 
폭우에 명주의 가족이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주:그럼... 슬슬 갈까?
 
백복:엥?! 이러고 간다고?!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었어?! (기다리는 중이었음)
 
명주는 천천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명주:야, 복아.
 
백복:응?
 
당신의 이름이 허공을 둥둥 부유합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명주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동시에, 명주의 피부 위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늬가 그려집니다.
 
마치 별자리처럼……
 
지금 백복이는 무얼 보고 있는 거죠?
 
명주:이번에는 잘 될 거야.
기억할 수 있지?
 
백복:어...?
 
듣기 판정.
 
백복: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48
판정결과: 실패
 
백복이는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가 그쳤던가요?
 
창밖을 바라보면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멈추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백복이는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이성 판정.
 
백복: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명주:이번엔 학교에서 만나자.
기다리고 있을게!
 
무어라 말하든,
 
명주는 백복이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고 눈을 감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명주를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별자리가 촘촘히 수 놓인 명주에게서,
 
우리에게서 빛이 쏟아집니다.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명주가 입 모양으로 어떤 말을 전합니다.
 
하나,
 
둘,
 
셋.
 
 
깜빡.
 
 
“이번 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백복,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나요?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SANC 1/1d2.
 
백복: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46
판정결과: 실패
2
(어벙벙)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창밖, 명주가 있던 자리, 뉴스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복:(명주가 있던 자리를 봐요)
 
명주에게서 뚝뚝 떨어지던 물마저 사라졌습니다.
 
손으로 만져본 가구들은 모두 마른 상태입니다.
 
백복:......??
(창밖도 내다봐요)
 
푸른 하늘입니다.
 
작은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고,
 
햇살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립니다.
 
먹구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백복:......?????? (같은 날짜가 맞나? 폰도 확인해봅니다)
 
분명 똑같은 날짜입니다.
 
이상한 일이네요.
 
백복:뭐야...? 꿈인가...??
(뉴스를 다시 틀어봅니다)
 
기상캐스터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중입니다.
 
맑음, 맑음, 그리고… 맑음.
 
장마철인데도 이렇게 맑은 날이 지속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분명 전부 비였는데….
 
날짜나 시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던 그때 그대로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을 살펴보아도 평범하고 익숙한 당신의 집일 뿐입니다.
 
창밖은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미 소리,
 
물감을 풀어둔 푸른 하늘,
 
건조한 여름.
 
백복이가 꿈이라도 꾼 걸까요?
 
쏟아지는 햇살에 이처럼 눈이 따가운데도?
 
백복:(진심요)
 
폭우도 명주도,
 
그리고 반짝이던 무늬마저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게 틀림없잖아요?
 
내일 학교에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했었죠.
 
대체 오늘 겪은 일이 무엇인지…
 
…멍한 정신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2. 말려
 
 
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어,
 
백복이는 배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꿈이었을까요?
 
걸음은 느릿해집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명주가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야, 그거 들었어? 오늘 정상수업이래.
 
백복:(강재수다)
 
백복이에게 자연스레 말을 거는 건...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입니다.
 
명주는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근데 오늘 날씨 진짜 좋지 않냐?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비도 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
며칠 째 쨍쨍하고 말이야.
 
백복:야, 근데 강명주 못봤냐?
 
친구:...강명주? 걔가 누군데?
다른 학년이야?
난 모르는데.
 
백복:엥???
너 또 명주랑 싸웠냐?
 
친구:뭐야... 명주가 누군데. 꿈꿨냐?
개학식부터 요란이네.
 
백복:아니 강명주 까먹었어 너?!
 
친구:???;;
정신 차려 임마~!
진짜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백복:(찐인가? 놀리는 거 아닌지 심리학판정)
 
해보세요.
 
백복:
심리학
기준치: 30/15/6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친구의 말은 진심입니다. 얘가 더위 먹어서 돌았나... 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백복:(어이업서)
 
친구:아무튼, 장마 기간에 계속 화창해서 진짜 기분 째진다!
어제처럼 오늘도 한없이 쨍쨍하고 말이야.
 
백복:어제도..?
 
친구:응!
어제도 엄청 맑았잖아.
하여튼 집에만 처박혀있으니까 날씨도 어떤지 모르고... (쯧쯧)
 
백복:(친구 눈앞에 손바닥 휙휙 해봐요)
어디 딴 세상에서 왔나.
 
친구:그건 내가 해야 할 얘기 같은데. (도끼눈)
...아, 맞다! 나 동아리 보고서!
 
걸음을 멈춘 친구는,
 
뒤를 돌더니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갈 두고 온 모양이네요.
 
덩그러니 남겨진 백복이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그리고….
 
지능 판정.
 
백복: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까 그 친구는 분명 명주와도 친한 친구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모르는 눈치였죠.
 
의문도 잠시,
 
교문 앞 횡단보도입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기 전, 당신에게 전화 한 통이 도착하네요.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합니다.
 
백복:(받아봐요)
 
화면을 보면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휴대폰 너머로 옅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한참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숨소리만이.
 
잘못 건 전화일까요?
 
"…복아?"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화를 건 이는 명주입니다.
 
불안하고, 여유가 사라진 그 목소리는 볼품없게 느껴져요.
 
동시에 그가 낯설기도 합니다.
 
백복:여보세요? 너 학교 안 와?
 
명주:보, 복아... 혹시, 내 이름 기억나?
 
정신 판정
 
백복:
정신
기준치: 45/22/9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3초 정도의 틈을 두고 명주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분명 자주 부르던 이름인데도…
 
문득, 아까 명주를 모른 체하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백복:명주잖아, 강명주!
 
명주:...방금, 기억해내려고 했지, 그렇지!
설마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거야?
 
백복:어... 아냐아냐 바로 기억 났어.
 
명주:...아닌 것 같은데!!
 
백복:맞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명주:
심리학
기준치: 45/22/9
굴림: 46
판정결과: 실패
 
백복:(ㅋㅋ)
 
명주:흠.
 
백복:아무튼, 너 지금 나오면 지각이야!
 
명주:아, 나 지금 학교야.
 
백복:뭐?!!
 
명주:먼저 왔어. 알아볼 게 있어서...
도서실에 들리려고.
 
보행자용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백복:(건너면서 계속 말해요)
도서실? 니가 웬일로..??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 즈음 명주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명주:…나, 얼굴이 사라지는 중이야.
 
백복:뭐???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그러나 명주은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닙니다.
 
휴대폰 너머의 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있습니다.
 
그리곤 전화를 뚝, 바로 끊어버리네요.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텐데.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끼익-!
 
큰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당신의 눈앞,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슬하게 멈춘 차 옆으로 한 학생이 넘어져 있습니다.
 
부딪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횡단보도 쪽을 쳐다보네요.
 
관찰력 판정
 
백복: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재빨리 번호판 외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운전자와 학생은 무어라 얘기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차로 시선을 옮기면…
 
바퀴가 없습니다.
 
백복:...??
 
잘못 본 걸까요?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그제야 바퀴가 보입니다.
 
그래도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네요.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모두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물론 당신도 그래야겠죠.
 
오늘 하루의 시작이 묘하고,
 
또 불안 불안하게만 느껴지네요.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백복이의 반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무섭게도 아름답습니다.
 
그러고보니 명주는 먼저 학교에 왔다고 그랬는데...
 
당신의 교실 속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명주만이 없는 게 아닙니다.
 
명주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그림을 잘라 떼어놓은 듯 보이지 않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지나가는 [친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백복:(자리표 다시 확인해봐요 기억하는 자리가 명주 자리 맞는지)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활자를 짚어 살피면….
 
없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명주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백복:????
뭐야..?
(지나가는 반친구 붙잡아요)
 
친구들은 방학 때 있던 일이나, 다른 학교보다 이른 개학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있습니다.
 
친구:아야! 뭐야?
 
백복:(아니 또 강재수야)
 
친구:왜??
 
백복:야, 강명주 자리 어딨어??
 
친구:너, 진짜 왜 그래??
양호실 같이 가 줘?
 
백복:뭐?!
 
친구:야, 너 강명주 아냐? (다른 친구에게 말해요)
 
다른 친구 역시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젓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하네요.
 
백복:너네 강명주 몰라..??
 
당신을 놀리는 기색이 아닙니다.
 
정말, 진지하게 명주의 반 친구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네요.
 
마치 벽을 두고 얘기하는 기분이라 백복이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들 명주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자리표와 친구들의 얘기를 확인한 백복이는 SANC 0/1.
 
백복:
SAN Roll
기준치: 42/21/8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매미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어댑니다.
 
하나, 둘, 셋.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명주는 어디로 간 건가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고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백복:(창밖의 하늘 볼래요)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관찰력 판정
 
백복: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WOW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백복:(뭐여)
(매미소리도 주의깊게 들어봐요)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듣기 판정
 
백복: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백복:(레드썬해조)
 
레드썬! 재판정!
 
백복:(이 조명 온도 습도... 교실에서 들리는 소음을 걸러내고 모든 감각을 매미소리에 집중합니다 가라 듣기!!!!!!!!!!!!)
 
듣기 +2
 
백복: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58912
+2: 극단적 성공
+1: 실패
  0: 실패
-1: 실패
-2: 실패
 
백복:(헉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치 녹음본을 틀어둔 듯,
 
그 소리는 기이하게도 완벽히 반복됩니다.
 
잠시 멈추는 건 7초에 한 번,
 
소리가 커지는 것은 일정하게.
 
백복:????
(이거 무슨 음모론인가?)
 
띠리링-
 
힘차게 울리는 수업 종.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백복,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믿을 수 있나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속삭여도?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출석 역시 명주의 이름은 건너뛰고 이어지네요.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갑니다.
 
“예문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부사를 써야 하므로…”
 
“…에서, 그러므로 빈칸에 들어갈 말은.”
 
“Where.”
 
몇 아이들이 답합니다.
 
동시에 선생님께선 당신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네요.
 
“백복이가 오늘 영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네.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모두의 시선이 당신에게 쏠립니다.
 
백복:네?
 
흔들림 없는 올곧은 시선을 보자,
 
절로 속이 메스꺼워집니다.
 
관찰력 판정
 
백복: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백복이가 어물쩡거리던 그때,
 
복도 쪽 창가를 익숙한 인영이 스쳐 지나갑니다.
 
남색 곱슬머리, 명주와 비슷한 키,
 
명주와 비슷한 분위기까지.
 
백복:...!
 
“박백복!”
 
선생님께선 벙긋하는 입으로 무어라 잔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명주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또 가득 채웁니다.
 
백복:저 잠깐 양호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뛰쳐나가요)
 
"뭐? 이 녀석이!"
 
당황한 표정의 친구들을 지나쳐 복도로 향하면,
 
당신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위로, 그리고 다시 위로.
 
어느 교실에선 시를 읊는 소리가,
 
어느 교실에선 공식을 정의하는 소리가.
 
계단을 오르는 이는 당신과 명주뿐입니다.
 
명주는 뒤 한 번 돌지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네요.
 
숨이 부족해집니다.
 
한참을 걷던 다리가 저릿해질 때 즈음,
 
당신은 활짝 열린 옥상 문을 보게 됩니다.
 
…명주가 이곳에 있을까요?
 
백복:야! 강명주! (헉헉)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펄럭이는 교복, 흔들리는 남색 머리카락.
 
백복:강명주..!!
 
당신이 그를 부르면,
 
명주는 천천히 뒤를 돕니다.
 
아, 그 얼굴은 분명….
 
“…복아?”
 
명주의 얼굴은…
 
얼굴은 지우개로 문댄 듯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SANC 0/1.
 
백복:
SAN Roll
기준치: 42/21/8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당신에게, 그리고 명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블러 처리가 된 듯한 그 얼굴에 몸이 반사적으로 얼어붙습니다.
 
백복:뭐야? 너, 얼굴이...
 
명주:복아, 이상해.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해.
너는 날 알고 있지? 지금 내 얼굴, 보여?
 
울먹이는 표정.
 
아니, 저걸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뿌옇기만 합니다.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지.
 
백복이마저 그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가진,
 
명주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씩 지워지는 중이란 것을요.
 
명주:…보이지 않는구나.
 
백복:.......
 
손을 뻗으려던 명주는 그대로 굳어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분명 그리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명주는 백복이를 와락 끌어안습니다.
 
쿵, 쿵. 엇박자로 뛰는 심장 박동 소리.
 
명주:나, 너무 무서워...!
내가 사라지고 있어!
어떻게 해...?
 
백복: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내가 기억하고 있잖아, 응? (등 토닥여줘요)
대체 언제부터 이런 거야...?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명주는 진정한 듯 천천히 당신에게서 떨어집니다.
 
명주:모르겠어...
‘차원의 관문’도 사용할 수 없어.
마치 이 세계에 갇힌 것만 같아.
 
백복:차원의 관문...?
 
명주:뭐야…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거야?
하...
(당신 어깨에 양손을 올립니다)
안 되겠다, 박백복.
지금 하는 얘기 잘 들어.
 
백복:(끄덕)
 
명주:우린... 원래 세계에서 신도들에게 쫓기는 중이었어.
도망치던 중 차원의 관문을 사용했지만, 그대로 우주 미아가 되었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 넘었어.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가끔 기억을 잃기도 했는데….
 
…우리가?
 
명주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동시에, 기이하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우주를 건너, 먼 은하를 건너,
 
다른 세계로 함께.
 
마치 당신이 겪은 일처럼.
 
 

 

 
세계를 건너, 우주를 건너, 어느 먼 은하를 건너.
 
우린 우주 미아가 되었으나,
 
원래 세계를 찾아 몇 번이고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었습니다.
 
그 과정 중 부작용에 의해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기도 했죠.
 
네, 지금 당신처럼.
 
비가 흠뻑 쏟아지던 어느 여름 역시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닌 NN번째의 또 다른 세계였으며,
 
그때 명주가 했던 행동은 차원의 관문을 넘기 위한 주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떠올린 백복, SANC 0/1d2.
 
백복:
SAN Roll
기준치: 41/20/8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2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모두 우리의 진짜 여름이 아닙니다.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명주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명주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명주:이 세계는 확실하게 다른 곳들과 달라. 다들 날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이유는 모르지만, 난 사라지는 중이고.
복이, 너 역시 날 잊을지도 몰라.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명주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당신에게 작은 수첩과 연필을 건넵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명주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명주:적어두면 더 기억하기 쉬울 거야. 잊지도 않을 거고.
 
그저 희망 사항일지라도.
 
명주:그때 기억나? 우리가…
 
취미, 좋아하는 것,
 
우리가 최고의 절친이라는 것,
 
백복이와의 일화,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
 
명주:내 취미는 스카프 모으기. 좋아하는 건 가을, 하와이안 피자.
키는 176. 쌍꺼풀은 없지만 눈썹이 진해서 아주 잘 생겼어.
그리고…. 아, 수영장에서 같이 육개장 사발면 먹었을 때,
나한테 건더기 스프가 없었던 거 기억나?
너한테 건더기 스프가 두개 들어있었잖아.
난 그때부터 우리가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지.
 
명주:아, 맞다, 맞다! 우리 처음 만났던 곳!
수학 학원 옥상이었잖아!
그 때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리 둘다 도시락을 먹으러 올라왔었지.
너 밥친구 없어보이길래 내가 말 걸었잖아.
너랑 친구 먹은 덕분에 내가 땡땡이 칠 때, 네가 대리출석 해준 것도 기억난다.
가끔 같이 학원 째고 먹는 떡볶이도 맛있었어…
 
명주:그리고...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너야!
꼭,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해?
 
백복:응, 당연하지. 기억하고 있어. (라고 말하지만 자신도 언제 잊을 지 몰라 적어 내려가는 이 상황이 착잡하게 느껴져요)
 
백복의 기록
 
기억해달라는 말과 함께 어느 정도 정보를 적었을 때 즈음,
 
명주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 없게 됩니다.
 
명주는 백복이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네요.
 
그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명주:다시 만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날 잊지 마.
복아,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면 안 될까?
 
백복:명주, 강명주... (금방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명주의 한쪽 팔을 붙잡아요)
마지막이라니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마.
 
계속, 다시.
 
불안하게 떨리는 그 목소리.
 
명주는 자신의 이름을 한참 동안 불러달라고 속삭입니다.
 
명주:…기억해 줘.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기대어 느껴지던 무게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지금처럼.
 
하나,
 
둘,
 
셋.
 
 
깜빡.
 
4. 꽂는
 
 
여름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SANC 0/1.
 
백복:
SAN Roll
기준치: 39/19/7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손에는 힘껏 구겨진 수첩,
 
급하게 휘갈겨 쓴 티가 역력한 글이 남아있네요.
 
가장 크게 [Yo 내이름은박백복]에 대한 정보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 □□□…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데도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이젠 여름이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만,
 
홀로.
 
한참을 되뇐다고 하여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네요.
 
움직입시다.
 
백복:(메모에 적어둔 이름도 안보이나요)
 
분명하게 써져있는데, 어쩐지 읊어지지가 않습니다.
 
백복:흠.......
(우선 옥상을 나서서 내려갑니다)
 
백복이가 움직이면,
 
툭,
 
가벼운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작은 쪽지네요.
 
백복:어..? (주워서 봅니다)
 
쪽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840.01이12꽃 / 도서실
 
혹시 몰라 남겨두었어.
 
백복:...?
(잘은 모르겠지만 명주의 글씨겠거니)
 
지능 판정
 
백복:(쪽지를 쥐고 도서실로 향해요)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도서실로 가는 길에, 어렴풋이 알아챕니다.
 
암호 같기도 하지만, 아마 이 숫자는 도서실 창구번호일 겁니다.
 
띠리링-
 
…그사이에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빠진 것 같습니다.
 
잠시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백복:(8이문학이엇나)
 
아니, 생각해보면 이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일이죠.
 
어쨌든 쉬는 시간입니다.
 
이름도, 성격도, 함께한 추억도,
 
그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정신 판정
 
백복:
정신
기준치: 45/22/9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를 오롯이 기억하는 건 당신뿐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속은 이 계절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합니다.
 
그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웃었던가요?
 
이 평화로운 세계를 떠날 정도로,
 
그 아이는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구겨진 수첩에는 옅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사서 선생님은 보이지 않네요.
 
백복:(800번은 문학인데도요...!!!!)
 
하... 이따가 나온단 말야 똑똑아~
 
백복:(알겠습니다 종교 섹션부터 봅니다)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백복:
자료조사
기준치: 42/21/8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백복:......? (예술 섹션으로 갑니다)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백복:
자료조사
기준치: 42/21/8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백복:(No)
 
재판정.
 
백복:
자료조사
기준치: 42/21/8
굴림: 2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백복:흠.......
(언어 섹션으로 넘어가요)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백복:
자료조사
기준치: 42/21/8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모든 섹션을 살펴본 후에야,
 
백복이는 800번대 [문학] 책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휴, 드디어 찾았네!
 
백복:(840번으로 가서 쪽지에 적힌 번호 찾아봐요)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영문 시집이었습니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의 여름을 닮았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NN번째 여름.
 
책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백복:(책 속의 쪽지 꺼내봅니다)
 
무언가가 적혀있습니다.
 
읽어볼까요?
 
백복:(네!)
 
✉:복이, 네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
하지만…… 이 세계는 아주 평화로워. 우리가 원래 살던 세계와 아주 유사하고,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듯해.
마치 우리가, 아니. 네가 그 자리에 들어가면 되는 것처럼.
너도 알잖아. 우린 너무 많은 여름을 건너왔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존재하긴 할까?
원래 세계를 찾는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
만약 네가 나를 잊고 이 세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야.
 
그 아래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 □□□…
 
그래요,
 
강명주.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그러나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요?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 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백복, 당신에게 명주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백복:(뭐... 시작한 이상 끝장을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을 불러요.
 
거짓된 여름을 부숴요.
 
남을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를.
 
명주를 오롯이 기억하는 당신의 입으로.
 
백복:(쪽지에 적힌 이름을 손끝으로 쓸어봅니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 강명주.
 
5. 법
 
 
깜빡.
 
당신이 명주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세계의 소리가 멈춥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재잘재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시간이 멈춘 듯 이곳은 고요해집니다.
 
기이한 침묵.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관찰력 판정
 
백복: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아니… 창밖을 봐요.
 
 
창밖으론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건물도 도로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짙고, 또 짙은 밤하늘이 전부입니다.
 
SANC 0/1d2.
 
백복:
SAN Roll
기준치: 38/19/7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깨닫게 됩니다.
 
이 거짓된 세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요.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백복이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니,
 
혼자가 아니라…
 
"복아!"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명주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의,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명주의 머리카락.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습니다.
 
물론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그는 당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네요.
 
듣기 판정
 
백복: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웅웅거리는 명주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습니다.
 
쿠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흩날립니다.
 
어라? 그러나 당황하던 것도 찰나.
 
정신을 차리면 100번, 600번, 800번.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실 전체가, 학교 전체가.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잔해 속에 깔리는 건 아닌지….
 
다행히도 창문이 보이네요.
 
아니, 이게 다행인가요?
 
지금이 당신이 있는 층은 1, 2, 3…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어요.
 
명주:내가 받아줄게, 뛰어내려!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명주가 소리칩니다.
 
말이 쉽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려요!
 
백복:...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명주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내립니다)
 
응원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 눈을 질끈 감아도,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와락, 그런 당신을 명주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명주가 묻습니다.
 
"내 이름, 기억나?"
 
백복:기억하고 있다고 했잖아!
강명주!
 
백복이가 답을 하자, 명주의 얼굴이 되돌아옵니다.
 
명주:그럼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백복:응, 내가 절친이라며. 네가 그랬잖아.
 
백복이가 답을 하자, 반짝.
 
둘의 팔에 새겨진 주문진에 빛이 들어옵니다.
 
명주:하하! 이것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는?
 
이번 물음은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백복:수학학원 옥상에서.
바보, 밥은 휴게실에서 먹었어도 됐는데. 옥상은 왜 따라왔던거야?
 
백복이가 답을 하자,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명주:네가 그곳으로 갔으니까, 한 번도 말 안 걸어봤고... (눈을 데굴 굴립니다) 호기심에!
 
명주가 다시 씨익 웃습니다.
 
명주:복아,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집으로 돌아갈 거지?
 
백복:당연하지.
이렇게 나사 빠진 것 같은 세상은 나도 싫어.
 
img
 
답을 들은 명주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팔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푸른 빛이 스칩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명주:하하, 네가 싫으면 나도 싫어~!
너무 평화로우면 재미없잖아! 그렇지?
 
백복:별로 평화롭지도 않더만.
 
명주:흐흐흐, 네가 내 이름만 안 불렀어도 평화로움이 반복됐을걸?
 
백복:... 아무튼 별로야.
 
명주:내가 없어서? (능청스레 웃어요)
 
백복:(멋쩍어서 주먹으로 명주 꾹 눌러요)
 
명주:악~!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가 환히 웃습니다.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감이 좋아요.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수없이 반복한,
 
수없이 넘은 이 여름을.
 
명주:다음 세계에서도, 서로를 기억하자!
 
이젠 모두 훌훌 털어버릴 차례입니다.
 
백복: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피식 웃어요)
 
백복이가 마지막으로 답하자,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하나,
 
둘,
 
셋.
 
 
깜빡.
 
 :강명주 생환 / 박백복 생환
보상: 진행 중 감소한 이성 전체 회복, 우리가 살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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